이른바 `성완종 게이트`로 연일 시끄럽다. 나라 안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 각종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밖으로는 미국·일본·중국과 미묘한 외교 문제로 중요한 시점에 후진국적 사건이 발목을 잡고 있다. 자원외교 비리에서 시작한 검찰 수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로 정치권 금품수수 의혹으로 확대됐다. 성완종 수사는 이제 정·관계 로비나 대선자금 등 어디로 파장이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고(故) 성완종 전 회장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참 대단한 인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도 그렇지만 성 전 회장은 매출 2조원가량 기업을 운영하면서 9500억원 규모 분식회계와 250억원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스스로는 "온 국민이 알 정도로 현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고 한다. 여전히 기업이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권에 로비를 하고 각종 특혜를 받는다는 부끄러운 모습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를 보면 인생 3무(無)가 새삼 느껴진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비밀이 없고,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이 막판 `구명 로비`에 나선 심리적 배경에는 "공짜 점심을 얻어먹고 왜 모르는 척 하느냐"는 불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많게는 7억원, 적게는 3000만원이 적혀 있다. 많다면 많은 금액이지만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정치권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액수일 수도 있다. `얻어먹는 것에 익숙`하다 보면 상대방의 성의에 무덤덤해질 것이다. 하지만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큰 금액이었고 이를 기억하고 도와주지 않아 서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또 비밀이 없었다. 둘이서 현금으로 주고받았다면 딱 잡아떼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운전기사도 있고 자금 전달자도 있다. 여기에 요즘은 고속도로 하이패스, 폐쇄회로TV(CCTV), 영상과 음성이 포함된 자동차의 블랙박스 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면서 비밀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 하루 CCTV에 83회 찍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인생에서 정답이 없다는 것은 편법과 불법이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이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만 남았다면 존경받는 인물이 됐을 것이다.
단돈 1000원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가난은 나의 스승, 근면은 나의 재산"이라고 말해온 건전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관급공사 수주로 회사를 키우고 수차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권력에의 의지`를 가지면서 삐끗했다. 돈의 힘 때문인지 특별사면을 두 번이나 받는 불가능한 일을 이뤘고, 경남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온전히 다시 찾아올 수도 있었다.
로비와 정치권을 이용하는 것이 목표를 이루는 쉬운 길로 보였겠지만 인생은 그게 답이 아니었다. 성 전 회장은 막판 `구명 로비`를 했을 때 모두 외면받았다. 내부에서는 경남기업의 최측근 임직원들도 등을 돌려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이 보기에 `성 전 회장은 회사 돈을 자기 마음대로 빼돌려 사용한 인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직원들이 그런 기업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에 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 전 회장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마지막은 외부에서도 외면받고, 측근들도 배신한 불행한 시기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수많은 달콤한 유혹이 찾아온다고 한다.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사기꾼들도 찾아오고, 좀 유명해지면 선거판에 뛰어들라는 정치권의 전화도 받는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인들이 오직 본업에만 충실하고 있다. 편법을 찾지 않고 오직 정도만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성완종 리스트가 남긴 교훈이 아닐까 싶다.
[박기효 사회부장]
출처 : 2015. 4. 27.자 A 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