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암고에서 교감이 점심시간에 식당 입구에 학생들을 줄 세워 두고 급식비 미납자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폭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급식비를 연체한 학생들에게 “내일부터는 오지 마라” “밥 먹지 마라” “꺼져라”라며 수치심을 줬다는 겁니다. 보도 이후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전면 중단 지시 반대 기류와 맞물려 “밥 먹을 돈도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눈칫밥까지 먹게 한다”며 비난이 높아졌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교감은 7일 학교 홈페이지에 “올해 2월 졸업생들의 급식비 미납액이 3900만 원에 이르러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미납된 장부를 보여 주며 ‘빠른 시일 안에 납부하라’고 했을 뿐 ‘밥 먹지 마라’ ‘꺼져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급식비를 교장, 교감 등이 자체적으로 낸 뒤 재단에서 돌려받는 식으로 운영해왔는데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학교 측 얘깁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교감의 해명을 뒷받침하는 재학생 글이 퍼졌습니다. 충암고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누리꾼은 블로그에 “당시 현장에 있었는데 교감선생님은 ‘지금 급식비가 몇 달 치 밀렸으니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만 했지 기사에 나온 폭언은 하지 않았다. 부족할 거 없는 집안인데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단 한번도 급식비를 안 내고 먹은 학생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충암고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시설수급자, 한부모가정 학생들에겐 급식비를 받지 않습니다. 급식비가 자동 납부돼 체납자 장부에 이름이 올라갈 일도 없다고 합니다. 자신을 충암고 2011학년도 졸업생이라고 밝히며 졸업앨범까지 인증한 누리꾼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부모님이 준 급식비로 PC방 가고, 새 운동화나 MP3 사는 애들이 한 반 40명 중 최소 5, 6명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일이 참 많습니다. 벨기에에서 아동 납치 성폭행 살인 사건 변호로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아동인권변호사 빅토르 히셀은 집 서재에 아동 포르노 영화를 쌓아 두고 탐닉해 온 소아성애자였습니다. 중국에서 고강도 부패 척결로 인기가 높았던 보시라이 전 충칭 시 서기가 알고 보니 1조5000억여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부패의 온상’이라는 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급식비를 둘러싼 충암고 사건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두 가지 진실이 혼재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조사에 나섰다니 진상이 곧 밝혀지겠지요. 로마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의 본성을 두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경계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비상식적인 얘기를 접했을 때는 무작정 비난부터 하지 말고 한 번쯤 상대편 처지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아예 이해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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