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과 더불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힘겹게 하는 내부적인 문제는 교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다.
로스쿨 교육이 변호사시험에 종속되다 보니 로스쿨 도입 당시 약속했던 '토론식', '문답식'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양한 전문가, 유능한 실무가 양성이란 로스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무가 융합된 교육이 필요한데 오히려 따로 논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실무 교수(판·검사나 변호사, 변리사, 외국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다 로스쿨 개원 후 옮겨 온 실무가 출신의 전임교수)'들은 로스쿨 교육이 여전히 '이론 교수(법학을 학문으로 공부한 연구자 출신의 전임교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이전 법과대학 시절의 교육과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며 실무 교수의 비율을 절반까지 확대해야 로스쿨 교육의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론 교수들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이론적 바탕이 없는 실무 교육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무 교육의 지나친 강조로 학생들이 '리걸 마인드(Legal mind, 법률적 사고방식)'도 형성하지 못한 채 법조계로 나가고 있어 학문으로서의 법학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실무 교수 50%는 돼야 로스쿨 교육 변한다"= 지방국립 A로스쿨 실무 교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시험 출제과목인 기본법을 가르치는 이론 교수들은 자신의 강의가 폐강될 염려도 없으니 강의 내용이나 방식에 대한 개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며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실무가를 길러내는 곳이기 때문에 수업 방식도 이론과 실무를 접목하는 형태로 개선돼야 하지만 이론 교수들이 주도하고 있는 로스쿨 내에서 그런 동기 부여가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B로스쿨 교수는 "실무 교수 비율이 50%까지 높아지면 이론 교수들이 긴장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론 교수들이 똘똘 뭉쳐 반대하기 때문에 실무 교수 확충 논의는 교수회의의 벽을 넘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이론 교수들은 학생들의 불만에도 고루한 수업 방식을 고집하며 연봉 산정에 도움이 되는 논문 실적 내는 데만 집중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로스쿨이 인가 기준인 실무교수 20%를 형식적으로 겨우 채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각 로스쿨이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전임교수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25개교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실무 교수는 모두 258명으로 전체 전임교수 908명 가운데 28.4%에 불과했다. 이같은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무려 13개교에 이른다. 아주대와 충북대 로스쿨은 20%도 안 된다. 고려대 등 10개교가 30% 이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장 높은 성균관대도 37.2%에 불과한 실정이다.
표= 변호사 출신 로스쿨 실무교수 현황
이론·실무 융합된 교육 아닌 과목 비중 놓고 대립각 세워 "실무교수 50% 돼야 혁신" "법학교육 강화해야"서로 비판 "취업자리 알선" "학원처럼 강의" 압박에 이직 교수도 늘어
◇"4~5년 지나면 모두 이론만… 현직 법조인 강의 늘려야"= 하지만 이론 교수들의 생각은 다르다. 실무 교수를 증원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의 C로스쿨 교수는 "일방통행식 이론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라며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리걸 마인드를 형성하는 것인데 3년의 짧은 기간 동안 이를 해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무 교수도 로스쿨에 와서 4~5년만 지나면 감각이 떨어져 제대로 된 실무 교육을 할 수 없다"면서 "그런 탓에 실무 교수도 이론 강의만 맡으려고 하지 실무 과목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실제 우리 로스쿨에서도 실무 교수 대부분이 이론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D로스쿨 교수도 "사법연수원 식의 실무 교육을 하려면 꼼꼼한 첨삭 지도가 필요한데 어렵고 귀찮아서 실무 교수들도 하기 싫어한다"며 "상황이 이런데 재정난까지 겹친 로스쿨에 실무 교수를 증원하라고 하면 납득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실무 교육은 이론적 토대 위에 진행되어야지 이론도 제대로 몰라 수업 따라가기에 급급한 학생들을 상대로 실무 교육을 강화하라는 것은 코미디"라며 "시간에 쫓겨 법학 교과서는커녕 시험용 요약서로 공부하는 학생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는 실력을 쌓을 수가 없다. 이론 교육을 오히려 강화하고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로스쿨 교수는 "실무 교수를 늘리는 것보다 대형로펌이나 현직 판·검사들이 겸임교수로 실무 교육을 하는 것이 한결 생생한 교육이 될 것"이라며 "일부 유명 로스쿨이 대형로펌과 개별적으로 업무협약(MOU)을 맺고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명한 변호사들을 겸임교수로 초빙, 강의를 개설해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데 판·검사 파견도 늘려 이처럼 학계와 실무계가 순환식으로 교육하는 방법이 널리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쿨 떠나는 교수들= 이론 교수와 실무 교수의 이같은 갈등은 법조인 육성을 위한 건강한 논쟁이지만 일부 로스쿨에서는 파벌화 되면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지방의 F로스쿨 실무 교수는 "자체 회의에서 교수법 개선 등에 대해 말하면 이론 교수들로부터 '너무 변호사의 시각에서만 학교를 바라본다'는 비판이 날아온다. 취업철이나 인턴 채용철이 오면 학교에서는 실무 교수들에게 학생들을 위한 자리를 알아보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하는데 처음 한 두번은 들어주다가 내가 '앵벌이'도 아니고 계속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지금은 거부하고 있다"며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 겸직도 금지돼 실무가로서의 감각을 잃어버릴까 걱정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계속 여기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론 교수들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교수 사회 갈등과 학생들의 이런 저런 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일반 법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G로스쿨 교수는 "최근 우리 학교의 젊은 이론 교수 1명이 다른 지역 법대로 옮겼다"며 "학생들은 '학원처럼 강의해 달라', '출제위원 불러달라'고 별의별 요구를 다하고, 학교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못살게 구니 '이도저도 다 싫다'며 떠난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유능한 교수들의 이탈로 교육 질 저하를 우려할 상황이 조만간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